에이블 캔버스
캔비 월드

포미와 루미의 포근한 작업실

포미와 루미의 포근한 작업실 입니다.

1화

비를 맞은 작은 그림

비를 맞은 작은 그림

비가 하루 종일 작업실 창문을 두드렸습니다. 톡, 토독. 토도독. 그때 문 앞에 작은 그림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그림의 액자에는 빗물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습니다. 포미는 작업실에서 가장 커다란 수건을 가져왔습니다. “많이 추웠겠다.” 포미는 그림에게 말하듯 조용히 중얼거렸습니다. 그리고 액자의 왼쪽을 닦았습니다. 오른쪽도 닦았습니다. 위쪽 모서리는 두 번 닦았습니다. 루미는 포미 옆에서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포미가 액자 테두리를 세 번째 닦고 있을 때, 그림 아래로 작은 물방울 하나가 또르르 떨어졌습니다. 물방울은 바닥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습니다. 루미가 웅덩이 앞에 쪼그려 앉았습니다. 웅덩이 안에는 그림의 코랄색과 초록색과 파란색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포미, 여기에도 그림이 있어.” 포미가 수건을 든 채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림은 저기에 있는데?” “비가 하나 더 그려줬나 봐.” 포미는 액자와 웅덩이를 번갈아 바라보았습니다. 액자 속 그림은 가만히 있었습니다. 웅덩이 속 그림은 빗소리에 맞춰 살랑살랑 움직였습니다. 포미가 웅덩이까지 닦으려고 수건을 내밀었습니다. 루미가 두 손으로 수건 끝을 살짝 붙잡았습니다. “조금만 더 보면 안 될까?” 포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두 친구는 나란히 앉아 바닥에 생긴 작은 그림을 바라보았습니다. 비가 약해질수록 웅덩이 속 그림도 조금씩 작아졌습니다. 마침내 작은 그림은 아주 조그만 색점이 되었다가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루미가 말했습니다. “없어진 게 아니야. 내가 기억했어.” 포미는 다 마른 액자를 다시 한번 닦았습니다. “그럼 이제 이 그림도 따뜻하게 포장해주자.” 포미는 작업실에서 가장 큰 포장지를 꺼냈습니다. 그림보다 훨씬 큰 포장지였습니다.

2화

너무 포근하게 싸버렸어요

너무 포근하게 싸버렸어요

비에 젖었던 그림이 모두 마르자 포미는 커다란 포장지를 펼쳤습니다. “이제 따뜻하게 싸줄게.” 포미는 그림을 포장지로 한 번 감쌌습니다. 잠시 바라보더니 한 번 더 감쌌습니다. “한 겹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루미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포미는 포장된 그림의 모서리를 살짝 눌러보았습니다. “아직 조금 쌀쌀할지도 몰라.” 포미는 포장지를 한 겹 더 둘렀습니다. 그림은 점점 두툼해졌습니다. 모서리는 둥글어졌고, 액자는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루미는 빈 라벨을 들고 포장된 그림의 앞뒤를 살펴보았습니다. 왼쪽으로 한 바퀴. 오른쪽으로 한 바퀴. 어느 쪽을 보아도 똑같이 포근한 포장지만 보였습니다. “포미, 어느 쪽이 그림의 앞이야?” 포미가 앞이라고 생각한 곳을 가리켰습니다. 그런데 손을 내리려고 해도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포장지를 너무 열심히 감는 동안 포미의 한쪽 팔까지 함께 말려 들어간 것입니다. 루미가 포미의 팔과 포장된 그림을 번갈아 바라보았습니다. “포미의 손도 같이 보내려고?” 포미는 잠시 생각했습니다. “손은 다음 그림도 포장해야 해서 안 돼.” 루미는 포장지 끝을 살짝 풀었습니다. 포미도 팔을 천천히 뒤로 당겼습니다. 쏙. 팔은 무사히 빠져나왔지만, 포장된 그림은 여전히 앞뒤가 똑같았습니다. 루미는 들고 있던 라벨을 한쪽 면에 대보았습니다. “여기를 앞이라고 정하면 어떨까?” 포미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림도 아마 그쪽이 편할 거야.” 그때 포장지 한쪽에 아주 작은 틈이 벌어졌습니다. 그 틈 사이로 그림의 파란색 한 조각이 살짝 보였습니다. 루미는 라벨을 내려놓고 틈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포미, 여기 작은 문이 있어.” 포미도 고개를 숙였습니다. 포장지 속의 파란색은 정말로 작은 문처럼 보였습니다.

3화

포장지 속의 작은 문

포장지 속의 작은 문

포장지 틈으로 파란색 한 조각이 보였습니다. 루미는 그 앞에 바짝 다가갔습니다. “정말 작은 문 같아.” 포미도 포장된 그림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문이라면 두드려봐야지.” 루미는 손끝으로 파란색을 살짝 두드렸습니다. 똑똑.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루미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다시 두드렸습니다. 똑, 똑. 그때 포장지 틈에서 베이지색 손 하나가 불쑥 나타났습니다. 루미의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포미! 문 안에서 누가 손을 내밀었어!” 포장된 그림 뒤에서 포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건 내 손이야.” 포미는 뒤쪽에서 포장지를 조금 느슨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문 안에 포미가 있었어?” “아니. 그림 뒤에 있었어.” 루미는 작은 문으로 나온 포미의 손을 살며시 잡았습니다. “그래도 먼저 인사는 해야지.” 포미도 손을 작게 흔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그림 뒤에 있는 포미입니다.” 루미는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포미가 포장지를 조금 더 벌리자 작은 문이 손바닥만큼 커졌습니다. 문 안으로 파란색과 코랄색, 초록색이 조금씩 보였습니다. 루미는 한쪽 눈을 가까이 대었습니다. “안에는 파란 방이 있어.” “또 뭐가 보여?” “코랄색 복도도 있어. 복도 끝에는 초록색 정원이 있고.” 포미도 작은 문으로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포미에게는 포장된 그림의 색면만 보였습니다. 하지만 루미가 말한 파란 방과 코랄색 복도와 초록색 정원을 천천히 상상해보았습니다. “그림 안이 생각보다 넓구나.” “응. 그런데 문을 다시 닫으면 그림이 답답하지 않을까?” 포미는 포장지를 닫으려던 손을 멈추었습니다. 두 친구는 작은 문과 그림을 번갈아 바라보았습니다.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루미가 말했습니다. “포미, 문 대신 창문을 만들어주자.” 포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림이 안전하게 여행하면서도 바깥세상을 볼 수 있는 작은 창문. 두 친구는 마지막 포장을 새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4화

창문을 남겨주세요.

창문을 남겨주세요.

포미와 루미는 포장된 그림 앞에 나란히 섰습니다. “그림이 안전하면서도 밖을 볼 수 있어야 해.” 루미가 말했습니다. 포미는 포장지 한가운데에 손을 대보았습니다. “여기에 창문을 만들까?” 루미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조금 더 아래가 좋을 것 같아.” 포미는 손을 조금 내렸습니다. “여기?” “조금만 더.” 포미의 손은 계속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마침내 루미가 자신의 눈높이를 가리켰습니다. “바로 여기!” 포미는 루미가 고른 자리에 작은 네모를 그렸습니다. 두 친구는 포장지를 조심스럽게 접어 작은 창문을 만들었습니다. 창문 안으로 그림의 파란색과 코랄색과 초록색이 보였습니다. 루미는 창문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포장된 그림 뒤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창문에 한쪽 눈을 가져다 댔습니다. 포미가 깜짝 놀랐습니다. “루미, 그림에 눈이 생겼어.” 창문 속 눈이 두 번 깜빡였습니다. “내 눈이야.” 루미가 포장된 그림 뒤에서 대답했습니다. 포미는 조용히 웃었습니다. 루미가 다시 앞으로 나오자 창문에는 그림의 색만 남았습니다. 두 친구는 포장지에 코랄색 리본을 둘렀습니다. 포미가 리본을 곧게 잡고, 루미가 가운데에 작은 매듭을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빈 라벨도 달았습니다. 포장이 모두 끝났습니다. 루미는 자기 눈높이의 창문으로 그림을 바라보았습니다. “잘 보여?” 창문 안의 색들이 햇빛을 받아 환하게 빛났습니다. 이번에는 포미가 창문으로 그림을 보려고 했습니다. 포미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조금 더 숙였습니다. 무릎 가까이까지 몸을 낮추고서야 창문 안을 볼 수 있었습니다. “루미에게는 딱 맞는 창문이구나.” “포미도 잘 보이지?” 포미는 천천히 대답했습니다. “응. 다만 아주 정중하게 인사해야 보여.” 포미는 작은 창문 앞에서 다시 한번 허리를 숙였습니다. “여행 잘 다녀오세요.” 루미도 창문을 향해 손을 흔들었습니다. 창밖에는 어느새 비가 그치고 따뜻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림은 포장지 안에서 안전했습니다. 하지만 더는 세상과 완전히 가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작은 창문으로 작업실도 보고, 빗물이 남은 나뭇잎도 보고, 곧 떠나게 될 길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포미와 루미는 완성된 포장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포근하게 품어주면서도 바깥을 볼 수 있는 포장. 그것이 두 친구가 함께 만든 가장 따뜻한 창문이었습니다.

이 세계의 이야기는, 실제 작가들의 작품에서 자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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