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 캔버스
캔비 월드

모리와 토리의 작은 전시

작은 선택이 작품을 자라게 하고, 자란 작품이 다시 누군가에게 기쁨을 전하는 캔비 월드의 첫 이야기.

1화

작품이 도착했어요

작품이 도착했어요

모리는 커다란 그림을 두 팔로 꼭 붙잡았습니다. 그림은 모리보다 넓었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기울었습니다. “천천히 가면 괜찮아.” 모리는 그림에게 말하듯 조용히 중얼거렸습니다. 그 앞에서는 토리가 작은 지도를 들고 씩씩하게 걸었습니다. “모리, 이쪽이야! 내가 길을 아주 잘 알거든!” 그런데 토리가 들고 있는 지도는 거꾸로였습니다. 모리는 그 사실을 알려주려다 잠시 입을 다물었습니다. 토리의 긴 귀가 이미 전시장 쪽을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토리, 지도보다 귀가 더 정확한 것 같은데?” 토리는 지도를 이리저리 돌려 보았습니다. “알고 있었어. 지도에게 전시장이 어디인지 가르쳐주고 있었던 거야.” 모리는 작게 웃었습니다. 그 바람에 그림도 살짝 들썩였습니다. 마침내 두 친구는 전시장 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토리가 문을 활짝 가리키며 외쳤습니다. “도착! 역시 내 지도는 틀리지 않았어!” 모리는 빈 벽과 품에 안긴 그림을 번갈아 바라보았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벽이 그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먼 길을 온 그림도 자기 자리를 알아본 듯 반듯하게 빛났습니다. 토리는 거꾸로 든 지도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물론, 이번에도 거꾸로였습니다.

2화

작품의 자리를 찾아요

작품의 자리를 찾아요

전시장에 도착한 모리는 그림을 벽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습니다. “그림은 어디에서 가장 편안할까?” 모리는 그림을 왼쪽에 놓아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옮겨 보았습니다. 조금 뒤로 물러나 고개도 살짝 기울여 보았습니다. 그동안 토리는 초대장을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입구 탁자에 한 장. 화분 옆에 한 장. 액자 아래에도 한 장. “토리, 초대장이 너무 꼭꼭 숨어 있는 것 같은데?” “보물찾기 전시회니까!” “우리 전시회가 보물찾기 전시회였어?” 토리는 잠시 생각하더니 초대장을 다시 모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세어도 한 장이 부족했습니다. 토리는 탁자 아래를 보고, 화분 뒤를 보고, 자기 발밑도 살펴보았습니다. 모리가 토리의 긴 귀를 가리켰습니다. 초대장 한 장이 토리의 두 귀 사이에 얌전히 끼어 있었습니다. “아, 여기가 제일 눈에 잘 띄는 자리였네!” 마침내 모리는 그림을 벽 가운데에 걸고, 화분을 그 옆에 놓았습니다. 토리는 초대장을 입구 탁자 위에 가지런히 펼쳤습니다. 그림도, 화분도, 초대장도 모두 자기 자리를 찾았습니다. 단 한 장만 빼고요. 토리의 귀에 꽂힌 초대장은 전시가 끝날 때까지 그 자리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3화

정원에 길이 열렸어요

정원에 길이 열렸어요

전시장 밖에는 작은 정원이 있었습니다. 모리는 화단 사이에 작품을 하나씩 세웠습니다. 작은 작품에는 작은 꽃을, 큰 작품에는 넓은 잎을 곁에 심었습니다. “이제 작품들이 정원에서 자라는 것 같아.” 모리는 물뿌리개를 기울이며 만족스럽게 웃었습니다. 그때 토리가 기다란 코랄색 리본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관람객들이 길을 잃으면 안 돼. 내가 완벽한 길을 만들게!” 토리는 입구에 첫 번째 말뚝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작품을 지나 두 번째 작품으로 리본을 이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작품까지 곧장 가도 될 길을 빙글 돌아 화단 뒤로 연결했습니다. 작은 꽃도 보여줘야 했고, 둥근 돌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토리는 리본을 왼쪽으로 돌리고, 오른쪽으로 돌리고, 다시 왼쪽으로 돌렸습니다. 어느새 정원에는 아주 구불구불한 길이 생겼습니다. 모리가 입구에서 전시장까지의 거리를 바라보았습니다. “토리, 그냥 걸어가면 열 걸음이면 도착할 것 같은데?” “맞아!” “그런데 이 길을 따라가면?” 토리는 리본을 따라 하나씩 세어 보았습니다. “하나, 둘, 셋…… 스물일곱 걸음!” 토리는 긴 귀를 쫑긋 세우며 말했습니다. “그럼 작품을 열일곱 걸음만큼 더 오래 볼 수 있잖아!” 모리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가면 작은 작품도, 큰 작품도, 화단에 핀 꽃도 빠짐없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자 코랄색 리본이 정원 사이에서 살랑살랑 춤을 추었습니다. 토리는 자신이 만든 길을 바라보며 뿌듯하게 웃었습니다. 그날 정원에는 가장 빠른 길 대신, 가장 많은 것을 만나는 길이 열렸습니다.

4화

아주 작은 축하

아주 작은 축하

정원의 모든 준비가 끝난 저녁이었습니다. 모리가 물을 주던 새싹에서는 어느새 커다란 작품 한 점이 피어났습니다. 모리는 작품 앞에 서서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잘 자랐구나.” 작품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노을빛을 받아 조용히 반짝였습니다. 그때 토리가 초대장과 코랄색 리본을 들고 달려왔습니다. “모리! 완성을 축하해야 해!” “좋아. 하지만 조용하고 작게 축하하자.” “걱정하지 마. 아주 작은 리본을 준비했어.” 토리는 등 뒤에 숨겨두었던 리본을 꺼냈습니다. 리본은 토리의 키보다 길었습니다. 한 번 펼치자 모리의 발 앞까지 닿았습니다. 두 번 펼치자 화분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모리가 리본을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토리, 이게 아주 작은 리본이야?” “응. 내가 준비한 것 중에서는 제일 작아!” 토리는 리본을 묶기 시작했습니다.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가운데를 꼭 잡아당기자 작품 아래에 커다란 코랄색 리본이 활짝 피어났습니다. 리본은 작품만큼 넓었고, 토리보다도 훨씬 커 보였습니다. 모리는 작품과 리본을 번갈아 바라보았습니다. “이제 어떤 것이 작품인지 헷갈릴 수도 있겠는데?” 토리가 두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그럼 작품이 두 개가 된 거네!” 두 친구는 작은 종이 조각 몇 개를 하늘로 뿌렸습니다. 종이 조각은 세 장뿐이었지만, 바람을 타고 정원 위를 오래오래 날았습니다. 커다란 리본도 바람에 살랑거렸습니다. 마치 작품에 두 개의 날개가 생긴 것 같았습니다. 모리와 토리는 나란히 서서 자신들이 만든 전시를 바라보았습니다. 축하는 아주 작게 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리본만 빼고요.

이 세계의 이야기는, 실제 작가들의 작품에서 자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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